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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군/무거운이야기

동물원의 동물.

얼마전 개봉한 동물에 관한 영화를 보고 난 후 일전에 보았던 사람과 호랑이가 동거아닌 동거를 하던 책이 떠올랐다.
그때 '과연 동물원의 동물은 행복할까?'라는 심각하지 않은 명제로 심각하게 고민해본적이 있는데 답을 내리지 못했었다.
당시 주변인들에게 위와같은 질문을 했을 때 약 80%의 사람이 불행할거라고 대답했고, 10%는 '행복하다.' 나머지는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었다.
통계적으로 봤을 때 아주 정확하고 올바른 통계는 아니지만 아마 일반적으로 불행하다는 생각을 많이 할것이다.
그리고 불행할 것이라 대답했던 모든 사람이 그 이유를 '자유를 잃어버린 동물은 영혼마저 잃게된다'란 한마디에 깊은 공감을 표했고 그 말은 야생에서 가질 수 있는 무엇인가를 잃었다는 말과 같다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이유는 될 수 없다.
야생에서 동물에게 자유가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늘 먹이가 부족하고, 천적에 대한 두려움에 떨어야하며, 영역을 지켜야한다.
그리고 위와같은 본능적인 움직임들, 즉 동물원의 동물이 야생에서 잃어버린 무언가가 그들을 행복하게 한다면 우리안에서도 그들의 남아있는 본능적인 행동들이 그들을 행복하게 할것이다.

동물에 빗대어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자유를 속박당하면 영혼이 파괴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사회라는 굴레에, 법이라는 장벽에 단체라는 문 안에 스스로를 가둬두고서 이것들은 필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들도 우리안에서 행복할 수 있고 동물들 또한 그러하다는 사실에대해서 인간은 사고할수 있어 행복할 수 있고, 동물은 그렇지 않기에 '이것은 억지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테지만 사람과 동물과 다른 사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절제'임을 감안한다면 억지라는 주장은 우리의 동물적 본성에대한 큰 모순이다.
우리 안에서나 밖에서나 그때의 본능에 충실한 동물들은 '절제'를 모르니 본능을 억제할 수 없어 행복하지 못하다는 말은
'절제'에 의해 그때의 본능에 충실하지 못한 우리가 행복을 느껴야한다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역설적이지만 위와같이 장황한 말을 늘어놓은 나도 동물원의 동물이, 야생에서의 동물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조심스럽게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외치는 한사람으로써, 대부분이 동물보다 인간이 우위에 있다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무리의 소심한 반대자로써, 우리가 서로의 행복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되지 않을까? 라는 물음을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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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기.  (0) 2012.01.23